자연과 함께 한 화업 50년
나는 1941년 2월 17일(음 1.12)에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산천리 286번지에서 4남 2녀중 3남으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광복을 맞이한 다음 해인 1946년 뜻하지 않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어머니와 할아버지 아래서 유년기를 보내게 되었다. 위 누님 두 분은 일찍 출가하시고 형님은 농촌지도소와 농사일에 종사하였다. 나와 동생은 춘천사범 병설중학교를 마치고 나는 사범학교로 동생은 춘천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느껴 각종 실기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하면서, 나는 더욱 그림의 매력에 빠져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미술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당시로는 교사에 임용되어 빨리 사회에 나가 집안을 돕고 싶은 생각에 나는 사범학교를 거쳐 초등교사가 되고, 동생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펼쳐보라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시켰다. 그 후 졸업한 동생은 춘천중학교 미술 강사로 있다가 춘천 공단에 입주한 금속공예 업체에서 도안디자이너로 근무하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일찍 사망하였다.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아동 미술교육에 관심을 갖고 어린이 미술 실기 지도에 열심히 공을 쏟아 각종 실기대회에서 많은 입상자와 단체 우승기를 독차지하기도 했고, 강원아동미술교육연구회에서도 열심을 다하여 미술교육에 열과 성을 바쳤다. 이런 노력이 교육계에서 인정받아 교육감표창, 대통령표창 등 많은 수상을 하게 되었다.
교직생활을 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하기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1970년 춘천초등학교 근무 당시 이수억 화백, 김봉국, 김정희 교수, 최재혁, 안호범 선배등과 춘천 일요화가회를 조직하여 총무로 있으면서 야외스케치를 많이 다니고 개인적인 작품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농촌을 벗삼아 지내며,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항상 머릿속에 담아 자연의 진솔한 아름다움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고민을 하였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항상 혼자 고민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족하지 못한 작품을 지금껏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나의 창작활동의 배경이자 모체는 항상 자연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더욱이 강원도 산야의 신비로운 사계절 변화가 주는 미적 아름다움, 다양한 색의 조화는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최고의 스승이며 영감과 표현 욕구의 에너지가 되어 이를 나의 소박한 작품속에 담아 남기게 한다.
지나치리만치 구상작에 몰두하고 고집하다 보면 실증에서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순박하고 꾸밈없는 어린이들만의 풍부한 표현 언어와 심리, 욕구, 사고의 구조 등이 투사되어 있는 세계, 아동화에는 이렇듯 많은 신비한 비밀이 숨겨져 내게 무한한 표현 가능성과 새로운 영감을 주고, 내 그림도 어린이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정년퇴임 후에는 한국화와 문인화, 서예 등에도 관심이 많아 문화센터와 동호인 모임인 샘물회, 연묵회 등에서 활동하며 잠시 다른 길을 걷기도 하였다. 그간 닦은 실력으로 대한민국유림서예대전에 출품하여 여러 번의 특선을 거쳐 초대작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 팔순을 맞아 노년기에 선 지금 그간 틈틈이 작업한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 화집과 함께 전시하려니, 그간의 나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보며 반성하는 자료가 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작품활동은 자연과 눈앞에 펼쳐진 사물에 대한 영감을 얻어 과장되지 않은 솔직한 나만의 표현 기법을 찾고 노력하여, 성숙된 작품세계로 몰입하고 싶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작품세계를 통해 나의 자아 실현을 꿈꾸며, 부단히 노력하지만 서두르지 않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싶다.